지난 1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막을 내린 OCP APAC 서밋에서 엔비디아가 중요한 이정표를 확인했다. 네트워킹 수석부사장 길라드 샤이너는 자사의 스펙트럼-6 광공동패키징(CPO) 스위치가 실제로 양산에 들어가 출하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가 수년간 기다려온 소식이었다.

이번 서밋에는 TSMC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SE그룹이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구글과 나란히 기조연설 무대에 섰다. OCP 행사 사상 처음 있는 조합으로, 그만큼 CPO 문제가 반도체 공급망 전반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신호였다.
CPO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물리학 그 자체에 있다. 지금 AI 스위치가 쓰는 448G PAM4 신호 방식에서는 구리 케이블이 신호를 안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약 25센티미터에 불과하다. 112G 시절 2미터였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히 짧아진 셈인데, 이는 제조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고주파 전기 신호가 도체를 통과하며 감쇠하는 근본적인 한계다.
그 결과 데이터센터 안에서 벌어지는 손실은 상당하다. 라이트매터의 비잔 노우로지 이사가 이번 서밋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AI 훈련 클러스터의 ‘모델 플롭스 활용률(MFU)’은 38~43%에 그친다. 즉 구매한 컴퓨팅 자원의 절반 이상이 네트워크 병목 때문에 그냥 놀고 있다는 뜻이다.

5억 달러짜리 데이터센터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2억8000만~3억1000만 달러어치의 연산 능력이 상시로 낭비되는 셈이다. CPO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광신호로 전기신호를 변환하는 광엔진을 스위치 칩 바로 옆, 밀리미터 단위 거리에 함께 패키징해 붙임으로써 별도의 신호 증폭 장치를 없애고 전력 소모를 최대 5배까지 줄이는 방식이다.
엔비디아의 스펙트럼-6 CPO는 TSMC와 수년간 공동 개발한 ‘코우프(COUPE)’ 플랫폼 위에서 만들어졌다. 전기 신호를 처리하는 칩을 광신호를 다루는 칩 위에 수직으로 쌓는 SoIC 적층 기술을 활용해, 전기-광 변환 경로를 물리적으로 최소화했다. TSMC의 첨단패키징 부사장 준 히는 코우프의 대역폭 밀도가 2026년 밀리미터당 0.5테라비트에서 2030년 4테라비트로, 4년 만에 8배 늘어날 것이라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다만 그가 동시에 인정한 것은 웨이퍼 단위 검사 규격, 광섬유 배열 조립, 고속 광패키징 공정이라는 세 가지 과제가 아직 업계 전체의 공통 기준으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코어위브, 람다,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클라우드가 초기 도입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이는 엔비디아와 TSMC가 긴밀하게 맞춘 단일 공급망 안에서 이뤄진 성과다.
실제로 세계 최대 반도체 패키징·테스트 업체 중 하나인 ASE그룹의 니콜 티엔 이사는 이 서밋에서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CPO가 AI 인프라의 변곡점이 된 것은 맞지만, 여러 공급업체가 경쟁하는 다변화된 시장이 성립하려면 필요한 공동 검사 표준과 시뮬레이션 기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 격차가 좁혀지는 데 12~24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브로드컴도 ‘베일리(Bailly)’라는 자체 CPO 플랫폼으로 맞서고 있는데, 특정 파운드리에 매이지 않는 개방형 생태계를 표방한다. 동시에 100개 넘는 기업이 참여한 ‘초고밀도 탈착형 광트랜시버(XPO)’ 규격도 병행되고 있다. 아리스타네트웍스의 공동창업자 앤디 베크톨샤임은 기존 탈착형 광모듈이 밀도 한계에 부딪히는 시점을 약 18개월 뒤로 못박으며, XPO를 그 시점까지 버틸 다리 역할로 규정했다.
라이트매터가 지난 3월 OCP 안에 발족시킨 개방형 표준화 작업에는 셀레스티카, 코닝, 델, 퀄컴 등이 이미 참여하고 있다. 목표는 MFU를 현재 38~43%에서 55~65%까지 끌어올리고, 비트당 에너지 소모를 5피코줄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이 작업이 얼마나 빨리 결실을 맺느냐가 엔비디아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가 다변화될지를 가른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수비 켕게리 부사장은 서밋 기조연설에서 더 근본적인 제약을 짚었다. 랙당 전력밀도가 100킬로와트를 넘어 200킬로와트대로 치닫는 지금, 진짜 병목은 연산량도 대역폭도 아닌 에너지 효율이라는 것이다. 결국 CPO 경쟁은 칩 설계를 넘어 소재·패키징·시스템이 동시에 맞물려야 풀리는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시장 규모도 이 경쟁에 힘을 싣는다. 델오로그룹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은 전년 대비 28% 성장해 120억 달러 규모를 기록했고, 이는 5분기 연속 20%대 성장이다. 데이터가 전기 신호로는 더 이상 빨리 흐를 수 없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힌 지금, 빛으로 갈아타는 속도가 곧 AI 인프라 경쟁의 속도를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참고 자료
– Tech Times, “Nvidia Ships Co-Packaged Optics Switch as Ecosystem Testing Gap Widens” (2026.8.12)
– 뉴스핌, “[AI로 읽는 경제] ④ AI가 AI 반도체를 설계한다” (2026.8.13, 참고 배경)
– OCP APAC Summit 2026, Taipei (2026.8.11~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