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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속도까지 읽어내는 ‘카멜레온 AI 반도체’, KAIST가 열었다

자율주행차 한 대가 도로를 달릴 때 처리해야 하는 정보는 속도가 제각각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보행자나 급정거하는 앞차는 수십 밀리초 단위로 반응해야 하지만, 노면 상태나 날씨 변화는 수 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난다. 웨어러블 기기도 마찬가지다. 심박은 매 순간 바뀌지만 활동량 추세는 훨씬 느리게 변한다.

문제는 지금의 AI 반도체가 이런 속도 차이에 둔감하다는 점이다. 한 번 만들어진 반도체는 신호에 반응하는 속도와 정보를 기억하는 시간이 고정돼 있어, 빠른 신호와 느린 신호를 동시에 잘 처리하기가 어렵다. 그 부담은 결국 소프트웨어가 떠안아야 했고, 그만큼 연산량과 전력 소모가 늘어났다.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반도체공학대학원 최신현 석좌교수 연구팀이 이 문제에 다른 답을 내놓았다. 지난 8월 7일 KAIST가 공개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팀은 반도체 스스로 반응 속도를 프로그래밍하고 그 설정을 기억할 수 있는 소자 ‘프로그래머블 동적 멤트랜지스터(Programmable Dynamic Memtransistor, PDM)’를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7월호에 실렸다.

멤트랜지스터는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와 연산을 수행하는 트랜지스터의 기능을 한 소자에 합친 차세대 반도체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전하 저장층’과 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전자 포획층’을 트랜지스터 하나에 함께 넣은 것이다.

데이터가 들어오면 전하 저장층이 이를 처리하고, 전자 포획층은 반도체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속도를 여러 단계로 조절한다. 마치 카멜레온이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을 바꾸듯, 이 반도체는 입력되는 데이터의 속도에 맞춰 자신의 반응 속도를 바꾼다고 해서 연구팀은 이를 ‘카멜레온 AI 반도체’라고 부른다.

PDM 개념도
프로그래머블 동적 멤트랜지스터(PDM)의 개념도. 전하 저장층과 전자 포획층을 하나의 트랜지스터에 결합해, 데이터 속도에 맞춰 반응 특성을 여러 단계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자료: KAIST 제공

실험 결과는 구체적이다. 연구팀은 전류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을 약 5배, 반도체의 특성 주파수를 10배 이상 범위에서 자유롭게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빠르게 변하는 정보와 느리게 변하는 정보가 뒤섞인 시계열 데이터를 예측하는 실험에서는, 반응 속도가 고정된 기존 소자와 비교해 예측 오차를 최대 40배까지 줄였다.

연구팀은 여러 개의 PDM을 연결한 어레이도 만들어 실험했다. 그 결과 기존 소프트웨어 기반 AI 시스템과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를 유지하면서도, 훨씬 적은 에너지로 동작하는 것을 확인했다.

한 번 반응 속도를 설정해 두면 별도의 전력 공급 없이도 그 설정이 유지된다는 점, 그리고 상용 반도체 공정인 CMOS와 호환된다는 점도 실용화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꼽힌다. 새로운 소재나 특수 장비 없이 기존 반도체 공정 라인에서 만들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제1저자는 KAIST 반도체공학대학원 박사과정 김대원 씨이고,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의 오영택 연구원과 이재덕 펠로우도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최신현 교수는 “별도의 복잡한 데이터 전처리 없이도 다양한 속도로 변하는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음을 보였다”며 “웨어러블 기기의 생체신호 분석, 자율주행 시스템의 동적 환경 인식, 로봇의 실시간 센서 정보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성과는 반응 속도가 고정된 반도체라는 오래된 전제를 깬다는 점에서 더 넓은 흐름과 맞닿아 있다. 최근 국내외 연구 기관들은 메모리와 연산을 하나로 합쳐 데이터를 저장된 자리에서 곧바로 처리하는 인메모리 컴퓨팅, 그리고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AI를 처리하는 온디바이스 반도체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PDM은 여기에 ‘프로그래밍 가능한 시간 반응’이라는 축을 하나 더 얹은 셈이다.

물론 아직은 실험실 수준의 소자와 어레이 단계다. 실제 상용 칩으로 이어지려면 대량 생산 공정 최적화와 신뢰성 검증 등 넘어야 할 단계가 남아 있다. 다만 CMOS 공정과 호환된다는 점은 이 격차를 좁히는 데 유리한 조건으로 평가된다.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연구개발프로그램, ETRI 연구개발지원사업, 산업통상자원부 인력양성사업, 삼성전자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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